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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나온 음식, 그래도 기분 좋게 먹은 이유 - 오마이뉴스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골목식당에 갔다. 한때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갈 정도로 장사가 잘 되던 식당인데 고작 테이블 하나에 연인 두 명만 앉아 있었다. 다른 식당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자리에 앉아 1인분 식사를 주문했다. 요즘은 혼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나이 젊은 식당 주인은 밑반찬을 깔아주고 공깃밥을 주면서 최대한 밝은 척 했다. 속사정을 들어보면 전혀 밝지 않겠지만 표정이라도 밝게 해야 손님들에게 자기 식당이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테니까 그랬을 것이다.

조금 기다리니 부글부글 끓는 뚝배기가 나왔다. 간을 보니 내 입에 딱 맞았다. 젓가락으로 당면과 버섯을 건져 올리는데 까만 줄이 하나 보였다. '뭐지? 설마?' 그렇다! 가늘고 긴 머리카락 한 올이었다. 주방 아주머니의 머리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순간 속에서 뭔가 불끈 솟았다. '어떡하지? 잠깐 생각해 보자.'

내가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하면 주인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할 것이다. 얼른 그 음식을 치우고 새로 금방 조리해 주겠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주방에 가서 아주머니에게 한소리 할 것이다. 그러면 주방에 있는 아주머니도 당연히 쩔쩔맬 것이다. 새로 음식이 나오면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젓가락을 들어서 샅샅이 살피게 될 것이다. 음식이 맛이 있는지는 전혀 모른 채 입에 집어넣을 것이다.

계산을 하려고 하면 주인은 미안하다며 음식 값을 안 받겠다고 할 것이다. 나는 카드를 집어넣으면서 말없이 나오고 주인은 내 등 뒤에서 다음에 또 오라고 할 것이다. 이것이 일상적인 수순이다. 이전에도 그런 방법을 써 보았다. 주위에서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했다. 밥장사 하는 사람이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호통을 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주인은 할 말이 없다. 그렇게 할까도 생각했다.

침을 꿀꺽 삼키고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전에는 장사가 잘 되었는데 지금은 손님이 가뭄에 콩나듯 하고 있다. 자신들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세상이 흉흉해서 그런 것이다. 임대료는 꼬박꼬박 내고 있을 것이다. 장사를 늦게까지 하고 싶어도 손님도 없고 9시 이후에는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할 수도 없다. 법이 그렇다.

내가 주문한 식사 한 끼는 돈 만 원도 안 된다. 그런데 이 음식을 치우고 다시 새롭게 만들고 거기다가 음식 값까지 안 받는다면 꽤 손해가 크다. 장사가 잘 될 때는 '그까짓 것 1인분' 하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하루 매상이 10인분도 안 될 수 있는 때이다. 나의 말 한마디, 얼굴 표정 한 번에 여러 복잡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모른 척 할 수도 없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그만큼 정성을 들여야 하고 신경을 써야 한다.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온다는 것은 큰 실수이다.

결국 좋게 좋게 풀기로 했다. 일단 머리카락은 눈에 잘 보이도록 하얀 냅킨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워낙 긴 머리카락이어서 눈에 안 띌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가고나면 주인은 테이블을 치우다가 머리카락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그리고 주방 아주머니와 자기들끼리 조용히 조금 더 위생관리에 신경 쓰자고 할 것이다. 1인분 매상은 올렸고 내 얼굴은 잘 모를 테니까 다음에 만난다고 해도 나에게 미안해서 쩔쩔매지는 않을 것이다.

기분은 좀 께름칙하지만 음식은 그냥 먹기로 했다. '에이! 배낭여행 왔다고 생각하자. 꼬질꼬질한 길거리음식도 먹는데 머리카락 한 올이 뭐가 대수라고. 그냥 집밥 먹는다고 생각하자. 어머니의 머리카락도 여러 올 먹으면서 커왔지 않은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더니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밥이 넘어갔다. 한 그릇 맛있게 잘 먹었다. 포만감에 겨워 기분 좋게 식당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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