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펀드 불황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공룡 펀드’가 자취를 감췄다. 올해 설정액 1조원이 넘는 국내 액티브 주식형 공모펀드는 하나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 초까지 이어진 상승장으로 인해 직접 투자에 나섰던 개인 투자자들이 최근 두 달 새 변동을 나타내는 장세에서 손실을 보자 펀드로 눈을 돌렸지만, 여전히 펀드 시장 불황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주식형 공모펀드 불황은 수익률에서 출발했다. ‘공모펀드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인식이 투자자 사이에서 강하다. 최근 10년간 주식형 공모펀드의 연평균 수익률은 2%대였다. 이런 추세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여파로 더욱 견고해졌다. 펀드매니저에게 맡기는 것보다 직접 공부해서 투자하는 게 수익률도 좋다는 인식이 개인 투자자 사이에서 생겼다. 여기에 유망 테마를 묶어 분산 투자해주는 ETF 열풍까지 불면서 액티브 주식형 공모펀드는 설 자리를 잃었다.
5일 금융투자협회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액티브 주식형 공모펀드 541개(운용펀드 대상, ETF 제외, 재투자분 포함) 중 설정액 1조원이 넘는 건 신영자산운용의 ‘신영밸류고배당증권자투자신탁(주식)운용’ 펀드가 유일했다. 이 펀드는 지난 2일 기준으로 설정액 1조67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2003년부터 설정된 신영자산운용의 ‘간판 펀드’로 배당수익률이 높은 저평가 우량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3개월 수익률은 약 10% 정도다.
하나UBS의 ‘하나UBS인Best연금증권투자신탁 1[주식]’은 설정액 4929억원으로 설정액 2위에 올랐지만 신영운용 펀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설정액 4000억원이 넘는 펀드는 이 하나UBS 펀드와 신영증권의 또 다른 펀드 ‘신영마라톤증권자투자신탁(주식)’(4383억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한국밸류10년투자연금증권전환형투자신탁 1(주식)모’(4214억원) 뿐이다.
이는 공모펀드 전성기인 2007년에서 2008년 초와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2008년 9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국내 주식형 액티브펀드 시장은 ‘미래에셋 디스커버리펀드’ ‘한국밸류 10년투자펀드’ ‘메리츠 코리아 펀드’ 등 각 운용사가 간판 펀드들을 내세워 투자자 자금을 끌어모았다.
2008년 1월 미래에셋운용의 미래에셋디스커버리증권투자신탁 설정액은 2조9532억원이었다. 이런 흐름은 2017년까지 가까스로 이어지고 있었다. 2017년 1월 메리츠자산운용의 메리츠 코리아 펀드 설정액은 1조3790억원이었고 한국밸류 10년펀드 설정액도 1조2135억원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들의 설정액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미래에셋디스커버리 펀드는 516억원, 메리츠 코리아 펀드는 2735억원, 한국밸류 10년펀드는 3132억원 수준이다.
◇ 업계에서는 "공모펀드 내리막길은 추세" 한숨
지난 2월부터 이어진 변동성장세로 개인 투자자가 직접 투자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내 액티브 주식형 공모펀드로 눈을 많이 돌렸다. 최근 한 달 사이 295억원(설정액 기준)에 이르는 자금이 몰렸다. 상승장에서 계속 자금 유출만 일어났던 액티브 주식형 공모펀드에 ‘희소식’이지만 공모펀드 시장이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공모펀드 중에서도 ETF 등 패시브 펀드 계열이나 채권형 펀드는 희망이 있다고 봐도, 액티브 주식형 펀드가 기울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며 "투자자들은 펀드에서 어차피 40~50종목 분산 투자한다고 하면 그냥 유망 섹터 ETF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도 "최근 액티브 주식형 공모펀드가 ETF와 비교했을 때, 명확한 컨셉도 없고 수수료도 더 비싸다 보니 투자자 수요가 줄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직접 투자 시장이 활성화한 것도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또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펀드 시장이 침체하면서 인센티브 등 성과에 대한 보상도 제시할 수 없어지니 좋은 인력도 빠져나가고 수익도 낮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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