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은 어떻게 ‘매너’의 상징이 됐을까. 19세기 프랑스 귀족들은 웃을 때 입을 가리는 용도로 손수건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런 ‘유행’을 만들어낸 이는 나폴레옹의 황후 조제핀이었다. 충치를 앓고 있던 조제핀은 치아가 보이지 않게 웃는 법을 연습하다가 결국 손수건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고안해냈다고 전해진다.
만약 조제핀이 21세기의 셀럽이었다면 어땠을까. 충치 치료를 넘어 치아교정, 래미네이트 시술, 잇몸성형까지 했을지 모른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엔 깨끗하고 환한 미소를 ‘장착’한 유명인들의 사진이 넘쳐난다. 전 세계의 미용 치과 시술 규모는 약 210억달러(약 25조원). 이제 부유층은 삐뚤빼뚤한 치아를 가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하얗고 반듯한 미소’를 돈으로 구입하는 세기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치아교정은 중산층의 상징”
서른여덟 살의 직장인 김하라씨(가명)는 9년 전 치아교정을 했다. 치과에선 교정치료로 약간의 부정교합이 바로잡힐 것이라고 했지만, 김씨는 사실 다른 이유로 치아교정을 결심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울퉁불퉁한 입매를 바꾸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가 치아교정을 결심한 2012년 즈음 TV에선 치아교정으로 이미지가 달라진 유명인들이 자주 소개됐고, 치아교정을 전문영역으로 내세우는 치과도 많아졌다. 당시 김씨는 교정치료와 각종 부가 치료로 약 1000만원을 썼다. 중고차 한대 값에 맞먹는 할부금을 모두 치르는 데 3년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가지런한 치아는 여유가 있는 집에서 자랐다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걸 갖고 싶었다.” 그는 자신을 움직인 것이 “중산층 진입의 욕구”였다고 말한다.
‘완벽한 미소’에 유독 집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에선 실제로 치아교정이 중산층의 상징이다. 미국 영화와 드라마에 치아교정기를 낀 소년·소녀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교정이 대중화돼 있기 때문이다. 치아교정뿐 아니라 래미네이트 등 미백 시술도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의료 저널리스트 메리 오토는 <아~ 해보세요>를 통해 미국의 치과 진료 80%가 미용 시술로 추정되고, 치아 미백엔 연간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가 쓰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토는 2007년 한 소년이 치아 감염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치아 불평등’을 추적하는 <아~ 해보세요>를 쓰게 됐다. 가난 때문에 치과 진료를 못 받는 이들이 수백만명에 달하지만 이와 동시에 미용 치과 시술 시장이 부풀어오르는 현상은 그야말로 ‘미국적’이다.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2014년 영국 신문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지적을 했다. “치아는 불평등을 가늠하는 새로운 기준이 돼가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있지만 치과의원의 보장률은 전체 보장률(64.2%)의 절반 수준(34.9%)이다. 미국만큼의 격차는 아닐지라도 치과 문턱 높이가 소득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소득 상위 10%의 부자들은 소득 하위 10%의 저소득층보다 치과를 3.7배 더 많이 다닌다는 통계도 있다(2016년·국민건강보험공단). 반면 미용 목적 치과 시술 규모는 날로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치아 앞면을 삭제해 세라믹 박편을 부착하는 래미네이트 시술은 한때 연예인 시술로 불렸지만, 지금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광고가 넘쳐난다. 잇몸이 선홍빛으로 보이도록 멜라닌 색소를 제거하거나, 짧아보이는 치아 때문에 잇몸을 절제하는 시술도 늘고 있다. 6년 전 한 치과의사가 낸 책 제목은 입과 치아를 향한 대중의 심리를 노골적으로 겨냥한다. <미인은 치과에서 만들어진다>. 한국에서도 치아는 돈으로 다듬을 수 있는 ‘외모자본’이 돼가고 있다.
김하라씨가 치아교정을 ‘중산층 상징’으로 여긴 것은 이러한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치아교정은 애초 미용 시술이 아니라 부정교합 치료 시술이지만, 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부정교합의 심각성이 아니라 경제적 여유가 있는지에 달려 있다. 미국 하버드대 사이먼 리사 박사가 2019년 180만명의 치아교정 환자 통계를 분석한 논문을 보면, 아동의 경우 소득 불평등과 치아교정 치료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디어가 부추기는 미용 치과 시술
“현대의 치아숭배는 전후의 낙관론에서 태어났다. 자유로운 세계는 웃음 지을 일이 더 많았고, 모두는 교외에 동일한 집들이 늘어선 것을 닮은 밝고, 곧고, 고른 웃음을 원했다. 꿈꾸던 입을 가지는 것이 갑자기 돈으로 가능한 일이 되었다. 칼을 두드려 치과용 드릴을 만든 것처럼, 치과의사들은 동화의 구현자가 되었다.”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에 대한 강박과 치의학의 ‘만남’에 대해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임스 윈브랜트가 <치의학의 이 저린 역사>에서 한 말이다.
자본주의는 ‘미용 치과 시술’ 시장을 키운 원천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50~1960년대 미국엔 중산층이 대거 형성됐고, 이들을 겨냥한 광고산업과 영화산업도 날로 덩치가 커져갔다. 미디어는 사람들이 꿈꾸는 ‘완벽’의 기준을 제공했다.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가 그 일부였다. 사실 제임스 딘과 같은 배우들은 실제로는 고르지 않은 치아를 가졌지만, 한 치과의사가 발명한 ‘할리우드 베니어’(영화배우의 치아 결점을 덮기 위해 만든 박판) 덕분에 ‘완벽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심어진 ‘환상’은 의학기술의 발전과 만나, 치아성형이 대중화되기에 이르렀다.
21세기엔 대중을 자극하는 미디어 종류도 더 다양해졌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선 일반인도 연예인 못지않은 입매와 치아를 자랑한다. 심지어 영국에선 ‘줌 붐’이라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최근 영국의 치아교정 전문의 5명 중 3명은 “성인여성 환자가 갑자기 늘었다”고 답했는데, 영국 치아교정학회는 코로나19로 화상회의 서비스 줌 이용이 활발해진 것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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