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생산량 전년 대비 10.7% 증가에도 정부 관망
민간업자 벼 매입 뒷짐…농민들 농협으로 몰려
“벼 사려는 상인이 코빼기도 안 보여요. 쌀이 과잉생산됐다고 하니 값이 떨어질 때까지 지켜보는 거죠. 결국 농민만 손해 보게 생겼습니다.”
산지 쌀시장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수확이 마무리되고 농협의 산물벼 수매가 끝나가는 시점인데도 올해산 벼 산지 거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서다. 매년 수확기면 민간도정업자들은 원료곡을 구입하기 위해 산지를 찾는다. 올해는 그런 움직임이 없다. 이문균 전남 보성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는 “민간업자들이 당장 필요한 몇포대 사가는 것 말고는 전혀 거래가 없다”며 “시장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쌀 생산량은 388만2000t이다. 전년보다 10.7% 증가한 양으로, 수요량을 31만t가량 웃돈다. 31만t은 국민 530만명이 1년 동안 소비할 수 있는 물량이다. 그대로 방치하면 내년 단경기 쌀값에 충격이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탄탄했던 쌀값도 흔들리고 있다. 20㎏ 기준 전국 평균 산지 쌀값은 10월5일 5만6803원을 기록했지만 11월15일 현재 5만3440원으로 떨어졌다.
불안해진 농민들은 수확한 벼를 농협에 모두 넘기는 분위기다. 전남 장흥에서 벼농사를 짓는 이준철씨는 “벼값을 묻는 전화가 한통도 없다”면서 “쌀은 과잉생산이라고 하고 벼를 찾는 상인은 없으니 농민들이 다 농협으로 가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계익 나주 다시농협 조합장은 “수확기 산지 거래가 전혀 없는 상황이 빚어지자 벼를 다 농협에 내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전남지역 농협은 밀려드는 벼를 매입하느라 몸살을 앓고 있다. 농협마다 매입량이 지난해보다 적게는 20∼30%, 많게는 두배 가까이 늘었다. 강선중 영광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는 “산물벼 2만8000t을 매입했는데 지난해보다 1만t 많은 양”이라면서 “저장시설이 부족해 2000t은 미곡종합처리장(RPC) 마당에 야적한 상태고 건벼 매입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전남농협지역본부(본부장 박서홍)에 따르면 16일 기준 지역농협에서 매입한 벼는 27만9000t(이하 쌀 환산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46.8% 증가했다. 다른 지역도 매입량이 30%가량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면서 농협은 전국적인 매입 계획량을 160만t에서 170만t으로 고쳐 잡았다.
쌀값이 더 떨어질 것이란 불안이 엄습하자 과잉물량에 대한 시장격리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쌀 변동직불제 폐지와 함께 개정된 양곡관리법에 따르면 쌀 생산량이 수요량을 3% 초과할 경우 정부는 격리조치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산지 쌀값이 여전히 높다고 판단하는 정부는 시장 개입에 미온적이다. 이에 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쌀생산자협회 등이 연대한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이하 농민의길)은 23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쌀 30만t 시장격리를 요구했다. 농민의길은 “올해 쌀 생산량은 격리 요건을 충분히 갖춘 상태”라며 “정부는 더이상 지켜보지 말고 당장 법에 따른 대책을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정 가격이 무너지지 않게 대응해야 한다”면서 “쌀 27만t을 즉시 시장에서 격리해 농민의 걱정을 덜어드리겠다”고 했다.
농협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매입량을 대폭 늘린 RPC의 경우 내년 3월부터 경영압박이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다. 전남지역 조합장들은 22일 ‘2021년 수확기 쌀 수급안정을 위한 대책회의’를 열고 정부의 조속한 대응을 요구했다. 장승영 해남농협 조합장은 “인건비며 기름값·비료값 등 모든 비용이 천정부지로 올랐는데 쌀값만은 오르면 안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농민들의 생존권을 위해 정부는 최대한 빨리 시장격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병순 영암 금정농협 조합장은 “요소수 대란 같은 사태가 먹거리 분야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순 없는 현실”이라며 “국민의 식량안보를 위해서도 텅텅 빈 정부의 곳간을 채워야 하는 만큼 정부가 빨리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광·무안=이상희, 홍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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