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초년의 맛-특별한 기억을 부르는 평범한 맛 - 주간경향

나는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 식사로 빵을 참 많이 먹었다. 간편하기도 했고, 맛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생활이 익숙해졌을 때, 이상하게 밥을 더 많이 찾게 됐다. 돌이켜 보면, 빵에 대한 나의 애정은 자라면서 수없이 들었던 ‘빵은 식사의 대용이 될 수 없다’는 한국식 전통의 계승과 ‘빵은 선진 서양인들의 음식’이라는 사대주의적 발상이 뒤섞여 만들어진 마음속 트라우마에 대한 짧은 반항이었을 뿐이다. 당시 워낙 많이 먹었던 탓인지 지금은 빵집에 들를 때마다 과연 이게 내가 정말 추구하는 것인지 자신을 의심하는 편이다.

초년의 맛>(앵무) 책 표지 / 창비

누구나 어떤 음식과 특별한 기억이 겹쳐지는 장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인생의 무언가를 처음 겪을 때, 나를 위로해준 음식은 더욱 잊기 힘들지 모르겠다. 앵두 작가의 <초년의 맛>은 그런 이야기를 스물넷이나 담았다. 누구나 처음은 서투르다. 첫 만남과 첫 이별, 새 학교와 직장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에 벌어지는 일들도 대부분은 새롭다. <초년의 맛>의 인물들에게도 그렇다. 불투명한 미래에 현재를 고민하고, 희망하면서 동시에 절망한다. 그럴 때마다 어떤 음식이 우리를 위로한다.

쉽게 체하는 재수생 하영에겐 이혼으로 연락이 끊긴 어머니와 직접 만든 매실청이 수능시험장에 도착하고, 소정은 연인이 처음으로 요리한 다코야키를 먹고 첫 키스에 도전한다. 불편한 맞선을 끝내고 남자친구와 헤어진 룸메이트와 함께 욕하며 먹었던 매운 닭발과 재수를 결정한 날 아버지가 따라준 첫 맥주의 맛도 잊기 힘들 것이다. 그리 비싸지 않아도 형편상 미루다 먹은 맛있는 한끼도 누군가에겐 따뜻한 기억이다.

물론 음식을 보고 좋은 기억만 떠올리진 않는다. 실직한 아버지가 몰래 배달하던 햄버거를 받아든 기억이나, 군대에서의 초코파이는 가슴 아픈 기억을 소환하기 쉽다.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어 과장해 퍼뜨린 소문에 손님이 줄어든 떡볶이 가게는 근처에 가기도 미안하고, 아들과 딸을 차별한다며 화가 나 임종에도 차마 용서하지 못한 할머니의 레시피는 볼 때마다 부채감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은 그리 체계적이지 않아 과거의 나쁜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희석되고 애틋하게 바뀌어 있다.

<초년의 맛> 속 사연은 어디선가 봤거나 마치 내가 경험한 것 같다. 그만큼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주위에서 흔히 듣고 겪은 것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겹쳐지는 음식의 맛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오늘 점심으로 먹었고, 저녁에 마실 그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등장하는 것들이 특별하지 않음에 오히려 진심을 느낀다. 이건 내 얘기라고 주장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19로 오랫동안 찾지 않았던 나의 맛집을 방문해 매상을 올려주면 어떨까. 그리고 팁을 주자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가던’이라는 단서가 달린 맛집 추천은 절대 믿지 말 것.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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