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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홀' 자전거 타고 시립병원 짓고…시민 곁 지키는 이런 시장 없나요 - 한겨레

[토요판] 남지은의 토요명작 리플레이
⑪ 시티홀>

김은숙 작가 2009년 20부작 드라마
부당해고된 10급 공무원 ‘신미래’
존경받는 시장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정치 냉소’ 대신 ‘희망 메시지’ 담아

2009년 방영한 <시티홀>(에스비에스)은 평범한 10급 공무원 신미래가 존경받는 시장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은 정치 멜로드라마다. 대통령, 국회의원보다 서민 같은 시장을 전면에 세워 시청자들이 정치를 가깝게 느끼게 했다. 유세 과정에서 비방이 넘쳐나고 위선으로 가득한 현실 정치의 민낯이 드러나지만 발로 뛰는 시장의 모습에서 희망이 보인다. 보다 보면 어느새 “정치가 아니라 시정을 한다”는 신미래 같은 시장을 그리워하게 된다. 방송 화면 갈무리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받는 벌 중 하나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플라톤) “투표는 총알보다 빠르고 강하다.”(에이브러햄 링컨)​ 시대는 변해도 역사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4·7 재보궐선거도 마찬가지다.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포함돼 ‘대선 전초전’으로 취급되며 투표하자는 목소리가 더 높았다. 슈퍼주니어 김희철이 투표 독려 라이브 방송을 하는 등 연예인들이 내놓는 메시지도 유독 많았다. 결과는 아시는 대로. ‘그들’을 지지했든 안 했든 이제는 “정치의 으뜸가는 요체는 국민의 신망을 얻는 것”이라는 공자의 말을 되새기며 시민을 위해 뛰어주기를 소망할 때다. 바람을 담아 ‘토요명작 리플레이’ 열한번째 시간. 시민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한 정치인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을 꺼내본다. 가상의 지방 소도시 인주시를 배경으로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평범한 10급 공무원 신미래(김선아)가 존경받는 인주시장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은 정치 멜로드라마다. 바로 김은숙 작가가 집필하고 신우철 피디가 연출한 2009년 드라마 <시티홀>(에스비에스·SBS, 20부작)이다. <대물> <프레지던트>처럼 좋은 대통령이나 거물급 정치인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은 많았지만 ‘시장’에 주목한 드라마라니. 김은숙 작가는 기획 의도에서 “엉뚱하고 유쾌한 소도시 시장의 좌충우돌 성공 이야기를 통해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냉소와 외면이 기대와 희망으로 바뀌길 바랐다”고 밝혔다.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시장의 모습이 <시티홀> 속에 들었다.
신미래는 10급 공무원에서 시장이 된 뒤에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서민적인 모습으로 시민들 곁을 지킨다. 에스비에스 제공
김은숙의 희망 투영 ‘정치 멜로’
<시티홀>은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 김은숙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의병을 대중적으로 알리며 역사의식을 고취했다면, 이 작품에서 김 작가는 원래 장기인 로맨틱 코미디에 정치를 버무려 무관심한 시청자들을 깨우려고 했다. 평균 시청률 15.9%(닐슨코리아 집계).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견줘 화제성은 약하지만, 일단 본 이들은 디브이디(DVD)를 소장했을 정도로 좋아하며 자신의 ‘인생 드라마’로 꼽는다. 주역을 맡은 차승원도 <한겨레>와 한 전화 통화에서 “(출연작 중에서) <시티홀> <최고의 사랑>이 인생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은숙 작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출연을 결정했었다. 김 작가는 어떤 소재도 쉽고 재미있게 변화시키며 대중이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차승원은 정치는 힘과 머리, 돈으로 하는 것이라고 믿는 야심가였다가 김선아를 만나 좋은 사람으로 변해가는 인물을 맡았다. 드라마가 나온 2009년 당시 한국 정치판은 복잡했다. 정권교체에 성공해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여당은 본격적으로 독주를 시작했고, 야당은 집권당의 ‘정치보복’이 시작됐다며 거세게 저항했다. 그해 5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복잡한 현실 정치를 드라마에 투영하기 위해 <시티홀>은 시청자들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도록 소도시 시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부패한 현실 정치의 민낯을 쉽고 재미있게 투영하고, 그때 필요했던 정치적 희망을 담아내며 정치로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준다. 드라마는 1회부터 한국 드라마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공직사회나 정치인의 모습을 통해 정치의 현주소를 풍자한다. 시장 재량의 사업비를 둘러싼 조례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아수라장이 되는 인주시의회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신미래 당선 이전 인주시장이던 고부실(염동헌)과 시의원 민주화(추상미)가 공적 자금을 빼내려고 아이디어를 짜내는 대화를 통해 실제 어디선가 이뤄지고 있을 법한 각종 비리를 까발린다. 민주화와 고부실은 “보도블록을 교체하고, 친인척 땅 주위에 다리를 놓고, 사돈댁 근처 농지를 다 대지로 바꾸자”고 말한다. 부정부패에 항의하다 시청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신미래가 기자회견과 1인시위로 맞서며 싸우는 모습은 그러기에 세상은 돌아가고 달라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괄호 속 시민권리 찾아드릴 것” 등
매회 등장한 명대사·명연설에
“이런 후보 나오면 무조건 찍는다”
현실정치 빗댄 시청소감도 줄이어
차승원의 연설 장면이 화제였다. 마지막회는 특히 명장면으로 꼽힌다.방송 화면 갈무리
신미래 같은 시장 어디 없나요
<시티홀>을 보고 나면 시장이 정말 중요하다고 새삼 곱씹게 된다. 극 중 인주시는 전체 13만명의 소도시다. 투표율이 전체 주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나마 투표장에 가는 상당수는 ‘승리당’이 깃발만 꽂아도 투표를 하는 곳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승리당 시장과 시의원은 마음대로 예산을 사용하고 시를 주물러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신미래를 간접 경험하면서 우리는 훌륭한 정치인을 보는 눈이 넓어진다. 신미래는 이전 시장이 사용하던 관용차 3대 중 2대를 판다. “필요 없으니까.” 그나마 1대도 관용차의 기름값이 너무 비싸다며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가까워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고 시정을 살핀다. 시민들에게 진짜 필요한 게 뭘까? 관사는 보육원 아이들의 공부방으로 활용한다. 작업복을 입고 농민들과 함께 벼를 벤다. 시청은 농기구를 사서 농민들에게 빌려주는 사업 등으로 시민 곁을 지키며 함께 걸어간다. 12회에서 신미래가 시장 취임 떡을 들고 공무원노조 사무실에 찾아가 “옳은 일엔 힘을 실어주고 부정부패하면 벌주시면 된다”고 말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노조위원장은 “노조 사무실에 직접 찾아온 시장은 처음”이라며 놀란다. 드라마에 공무원노조가 등장하는 경우도 이례적이다. ‘커피 하나는 기막히게 타는 애’ 정도로 알던 신미래가 시장이 되자 각 부서 국장들은 일괄 사표를 내고, 신미래는 자신을 무시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 여기에 앉아 정치가 아니라 시정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전 여러분이 무섭지 않습니다.” 전 시장의 생색내기 전시행정이었던 청사 이전을 수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백지화시킨다. 또 그 자리에 유해폐기물 공장을 세우려는 대기업의 꼼수도 막아낸 뒤, 인주시에 꼭 필요한 시립병원을 짓는다. 제임스 클라크는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훌륭한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 곁의 수많은 정치인 중 몇명이나 신미래 시장처럼 다음 세대를 생각할까? 오늘의 시장들은 어떨까? 권력자들의 반대에도 시민을 위해 용기 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돈이 되지 않아도? 부디 그래주기를 바란다.
현실 정치의 민낯을 드러내면서도 희망 담은 이야기로 즐거움을 안겼다. 방송 화면 갈무리
<시티홀>은 매회가 명대사, 명장면 맛집이다. 김선아의 시장 선거 유세 장면, 차승원의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 유세 장면에서 많이 등장한다. 특히 차승원의 연설 장면은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정치인이 불행해야 국민이 행복하다는 말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연설과 “1억원을 버는 게 빠를까요, 세는 게 빠를까요?”로 시작하는 연설 그리고 마지막 20회 명동 한복판에서 보조출연자와 함께 실제 시민들이 섞인 인파 앞에서 연설하던 장면은 보고 또 보고 싶은 명장면이다. “여러분이 지금껏 한번도 주장하지 못하고 괄호 안에만 묶어두었던 그 권리, 지금부터 제가 여러분의 괄호가 되어 그 권리를 찾아드리겠습니다.” 차승원은 “(제작진이) 연설문을 보고 해도 된다고 했지만, 외워서 하는 게 캐릭터에 더 맞는 것 같았다. 긴 대사를 빠르게 한번에 가야 해서 외우는 게 힘들었다. 연설 장면을 연습하느라 식도염에도 걸렸다”며 웃었다. 김은숙 작가는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DC)인사이드 ‘시티홀 갤러리’에 “연설 장면은 정말 대사가 많은데 차승원 배우가 그걸 다 해내더라”며 “너무 잘해내니 신나서 연설 장면을 쓰고 또 썼다”고 밝혔다. 연설 장면이 나오는 날이면 온라인 게시판에는 “차승원과 김선아 같은 후보가 2010년 총선에 나오면 무조건 찍겠다” 등의 시청 소감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2022년 대선에선 어떨까?
김은숙 작가는 드라마 팬 게시판에 “차승원의 멜로 연기에 설렜다”고 썼다. 두 배우의 멜로 케미가 너무 좋았다. 방송 화면 갈무리
차승원과 김선아의 멜로 케미
김은숙 작가는 드라마가 끝나고 열린 종방연에서 “<시티홀>은 정치 드라마가 아니라 멜로 드라마”라고 못박았다. 실제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차승원과 김선아의 멜로 호흡이 이렇게 좋았나 싶어 놀라게 된다. 차승원이 출연한 드라마 중에서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로 꼽는 <최고의 사랑>에서 공효진과의 호흡이 귀여웠다면, <시티홀>에서 김선아와의 호흡은 ‘으른 멜로’(어른 멜로)다. 함께 업무를 보러 간 서울에서 자신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틈에서 손잡고 걸으며 모처럼 자유를 만끽하는 데이트 장면은 보는 이들을 설레게 한다. 김은숙 작가는 당시 ‘시티홀 갤러리’에 “차승원이 멜로를 그렇게 잘하는 배우인 줄 몰랐다”며 자신도 방송을 보면서 설렜다고 썼다. “길거리 데이트 장면은 뉴요커 스타일로 서로에게만 집중해달라고 주문했는데, 상상하고 쓴 것보다 100배 더 예뻤다”고 만족해했다. 차승원도 <시티홀>을 하면서 여자들이 남자들의 어떤 행동을 좋아하는지 많이 알게 됐다고 한다. 예를 들어 차승원이 김선아를 앞머리를 흐트러지게 쓰다듬는 동작이나, 길을 걸을 때 상대를 안전한 쪽으로 걷게 하고, 손가락이 닿을락 말락 할 때의 긴장감 등이다. 차승원은 “그런 걸 안 해봤으니까. 여자들이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시티홀>을 촬영하면서 알게 됐다”며 웃었다. <시티홀>에서 추상미와 남편인 시청 직원 이형철(이정도) 캐릭터도 굉장히 신선하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서로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다. 이형철은 시장 선거에 후보로 나온 장인어른 대신 같은 시청 동료인 신미래를 지지한다. 그런데 아내와 장인어른은 툴툴대면서도 또 그걸 인정해준다. 처음엔 신미래를 인정하지 않던 시청 직원들도 그의 진심에 서서히 마음을 연다. 신미래가 시를 살리려고 시장직에 사표를 내자 시청 직원들은 모두 함께 따라 그만두겠다고 눈시울을 붉힌다. “내 한 표가 그렇게 만만하냐”, “원더우먼 신미래 당신만이 시장이다”라며 그를 지지한다. 현실의 당신에게도 진심으로 지켜주고 싶은 정치인이 있는가. 현실을 닮은 드라마 속 정치 세계에서 신미래는 새로운 희망이다. “이런 멋진 국회의원이 있었으면, 이런 아름다운 공무원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김은숙 작가는 방영 전 제작발표회에서 이렇게 바랐다. 2009년 당시에는 플롯(구성)이 비현실적이라며 그해 한국방송작가상 최종 후보에서 탈락했다. 아무리 드라마지만 그렇게 착한 정치인은 너무 현실적이지 않다는 소리였을까? 10급 공무원이 절대 시장이 될 수 없다는 얘기였을까. 2021년에 돌이켜보니 어떤가. 여전히 비현실적인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 <한겨레> 문화부 기자. 언제든 옛날 콘텐츠를 다시 볼 수 있는 시대. 세대불문 되감기하면 좋을 대중문화 작품을 소개하려 한다. 연출, 연기, 이야기 기본 3박자에 충실하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옛 작품들이 콘텐츠의 본질을 일깨운다. 지금 시선에서 새 해석이 등장할지도. 제작진과 배우들의 비하인드 코멘터리도 담아보겠다. 3주에 한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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