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무심히 잎을 쏟아내고 있다. 몇 차례인가 신호가 바뀔 때까지 횡단보도는 정지된 모니터 화면의 커서같이 불빛만 깜빡이고, 마스크로 표정을 가린 사람들이 이따금 정지 화면을 풀고 공중의 이파리처럼 떠다닌다. 바람도 숨죽인 오후, 한 평 남짓 나무 둔치에 내려앉은 가을이 유리문을 밀고 들어온다. 졸고 있던 햇빛이 슬몃 몸을 일으킨다.
자영업으로 살아온 햇수가 십수 년이 훌쩍 넘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했다. 때로 어렵고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었고, 그 과정은 삶에 대한 의욕이 되기도 했다. 프랜차이즈 카페가 막 정착하던 무렵에 시작한 가게는 제법 수입이 괜찮았다. 오르막 내리막이 있었지만 그 당시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카페를 선택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블루오션이라는 게 반짝하는 오로라 같은 것이어서 호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대기업의 편의점이 동네 골목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온종일 불 밝힌 위세는 구멍가게 앞의 평상을 거둬들이게 했다. 관절염을 끌고 나온 이웃의 주름진 이야기가 점점 사라지고, 비 오는 날 인력시장 노동자의 풀 죽은 외상술을 달아주던 인정도 더 이상은 볼 수 없게 되었다.
경기에 따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어버리는 직군이 자영업이다. 나 역시 업종을 바꾸면서 그나마 작은 가게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또 한 번의 위기가 몰아닥쳤다. 점차 줄어드는 매상 때문에 아르바이트 직원을 쓸 수 없는 상황은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겪던 고통이다. 이번에는 매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하등 필요가 없는, 그저 견디며 기다려야 하는, 막막한 희망에 의지해야 하는 사람들 틈에 나도 합류하게 된 것이다.
노동량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수입이면서도 근근이 생활을 이어오던 중 코로나 팬데믹은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돌이켜보면 사스의 공포도 엄청난 것이었다. 그 당시에도 수입이 곤두박질쳤다. 신종플루와 메르스를 거치며 나름 내성이 생겼기 때문에 작금의 팬데믹도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만에 불과했다. 시행착오와 난관을 통해 습득한 경험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급기야 불면증에 원형탈모까지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견뎌야 했다. 살아내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언제부턴가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습관처럼 하늘을 보게 되었다. 그리곤 걸었다. 빌딩들이 운집해 있는 중심상가 대로변마저 썰렁하게 변한 모습이 절망을 가중시켰다. 인파로 북적이던 거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가는 차량마저 눈에 띄게 줄었다. 한 집 건너 한 집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는 점포들이 즐비하고, 그나마 문을 연 점포들도 멍해진 눈으로 가게를 지키고 있다.
나 역시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어도 아침 일곱 시면 가게 문을 연다. 쓸고 닦고 정리를 해도 손님 한 사람 오지 않는 가게를 지키고 있노라면 울컥 눈물이 앞을 가릴 때가 있다. 폐업자금조차 없어서 폐업을 못 하는 자영업자들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예닐곱 평 가게 안은 한숨만 쌓일 뿐이다.
남편의 실직과 함께 시작된 자영업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새벽같이 부산을 떨고 심야시간까지 문을 열어 쥐어지는 대가가 적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세 들었던 건물이 팔리면서 권리금 한 푼 없이 가게를 정리한 적도 있었지만 그때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대출까지 끼어가며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시작한 업종이 지금의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이제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허공에 떠 있는 구름다리는 출렁거리지만 놓지 않는 끈이 있어 그 공포를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현실은 잡을 끈이 보이지 않는다.
도시를 두르고 있는 하늘이 부싯돌처럼 차고 푸르다. 능선과 능선 사이 하늘 자락이 무너진 성터처럼 쓸쓸하게 가슴에 내려앉는다. 그 끄트머리 은행나무 군락지에 눈길이 간다. 팔도 다리도 뭉텅 잘린 나무들이 을씨년스럽게 무리 지어 있다. 지금의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을 닮은 것 같다. 이식을 준비하는지 포클레인과 인부들이 웅성거리며 서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포클레인 삽날을 나무 옆구리 깊숙이 밀어 넣을 때마다 우두둑 소리가 난다. 흙더미에서 들어 올려진 어른 손가락 굵기의 흰 뿌리들이 내 머리카락처럼 한 움큼씩 쏟아져 나온다. 뽑힌 나무들이 또 한 번 전정 톱날에 의해 사정없이 잘려나간다.
잘려나간 나무의 모습이 어찌 내 모습만일까. 저 잘린 나무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바람결에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언젠가 이식된 저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럴 수 있으리라. 한 걸음 내딛는 내 걸음이 내 생의 뿌리가 되고 두 걸음에서 희망의 싹이 움트리라.
기사 및 더 읽기 ( [삶의 한 꼭지 - 9] 이식 < 삶의 꼭지글 < 연재 < 기획/연재 < 기사본문 - 부안독립신문 )https://ift.tt/3iTHb0B
매상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삶의 한 꼭지 - 9] 이식 < 삶의 꼭지글 < 연재 < 기획/연재 < 기사본문 - 부안독립신문"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