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K-미술관 결산]
미술품 2만3000여점 기증 계기
올해 미술시장 거래 총액 9200억
미술품 투자종목화 NFT 유행
예년 두배이상... 해외업체도 몰려
지난 10월 성황리에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 전시장 광경. 역대 최고의 매상고를 기록하며 미술시장 활황세를 이끌었다.
굴러 들어온 복인가? 불안하고 두려운 행운일까? 2021년 한국미술판은 전례 없는 대중적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제도와 시장 양 측면에서 변화의 바람이 몰아쳤다. 1조원대에 달한다는 추산까지 나오는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고미술품·근현대 미술품 컬렉션 2만3000여점이 변화의 기폭제가 됐다. 이 거대한 컬렉션이 지난 4월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것은 격동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기증관 건립을 둘러싸고 지역 문화분권을 명분으로 내세운 지자체들의 유치 경쟁과 중앙정부와의 갈등, 상속세액 대신 미술품을 대신 내게 하는 물납제 공방으로 파장이 번지면서 한국 사회를 뒤흔든 이슈가 되었다. 이건희 컬렉션의 파장은 올해 초 주식과 부동산에서 눈을 돌린 젊은 세대군이 새 투자 대상으로 미술 작품을 지목하며 일어난 미술품 구입 열기를 부추겼다. 여기에 디지털 복제물에 원본성과 통화성을 보증해주는 새로운 방식의 작품 암호화폐 형식인 엔에프티(NFT·대체 불가능 토큰)는 미술품의 주식화, 투자 종목화를 이끌며 기존 미술 장르 개념의 무게감을 삭제해버렸다. 지난 3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디지털아트 작가 비플의 엔에프티 작품 <매일: 첫 5000일>이 약 785억원에 거래된 것을 계기로 국내 경매사, 화랑, 사설 업체들이 개별 작가의 작품은 물론, 문화유산과 거장의 명작들까지 닥치는 대로 엔에프티 재원으로 활용하면서 시장에 내놓았다.
지난 7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전시장. 김환기의 대작 <여인들과 항아리>와 푸른색 점화 대작 등이 보인다.
기괴한 미술시장의 팬데믹 활황은 미술판의 감상, 거래 시스템 등에 격동을 몰고 왔고, 시장은 급팽창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케이아트마켓이 추산한 결과를 보면, 올해 1~12월 미술시장 거래 총액은 9200억원을 넘어서, 4000억원대에 머물던 기존 시장 규모를 단박에 두배 이상 불렸다. 국내 최대의 국제미술품 장터인 한국화랑협회 주최 키아프는 10월 행사에서 650억원으로 역대 최고액 매상을 올렸고 다른 크고 작은 아트페어들도 상당수가 최고 매출액을 기록했다. 거래의 핵심을 차지한 서울옥션, 케이옥션 등 미술품 경매사들의 2021년 낙찰총액도 3200억원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돌파했다. 내년에는 영국에 기반을 둔 세계적인 미술품장터인 프리즈 아트페어가 한국에서 키아프와 공동장터를 꾸릴 예정이어서 내년 시장 규모 총액이 꿈의 1조원을 넘어서는 것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20세기 초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통찰했듯이, 지금까지 미술품은 유한층이 비싼 물품일수록 더욱 사려고 하는 ‘과시적 소비’의 상징물이었다. 하지만 올해 미술계에 불어닥친 젊은 엠제트(MZ) 세대의 작품 구입 열풍과 미술품 장터, 경매의 활황, 엔에프티의 대유행은 미술품을 과시적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언제나 가격 등락을 노려 사고팔 수 있는 주식이나 공산품과 같은 성격으로 변화시켰다.
지난 7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전시 현장.
격변과 급성장으로 요약되는 미술판 흐름은 방탄소년단(BTS), <오징어 게임>으로 대변되는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유행과 더불어 올해 한국 문화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양상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미술판의 트렌드는 대중문화의 한류와는 결이 전혀 다르다. 창작자들이 공들여 창의적 콘텐츠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빛을 발해 ‘케이컬처’로 자리 굳힌 한류와 달리 미술판은 콘텐츠 역량은 뒷전인 채 양적인 판매 경쟁과 플랫폼 구실에만 머물렀다. 화랑과 경매사 등의 시장 업자들은 이른바 미술품장터 아트페어로 대표되는 국제시장 플랫폼 구실을 내세워 서구 중심의 미술자본 유통의 안전판 노릇에 만족하며 거래의 과실만을 따 먹고 경매 물건들을 확보하는 구도에 머물렀다. 미술 콘텐츠 개발과 작가 발굴을 책임진 국공립 미술관과 화랑들 사이에서는 주목할 만한 양질의 기획전과 작가 발굴 전시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새내기 청년 작가들이 갓 만든 작품들까지 온라인 경매에 마구잡이로 팔아치우는 경매사의 천민적 행태 속에서 화랑들은 작가들의 전시 의욕을 꺾은 채 자신들도 경매 행사를 치르겠다고 나서는 모순된 행보를 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거장 박수근의 초창기 작품들과 새로운 미술사 사료들을 찾아낸 박수근 회고전과 근대기 미술인과 문인의 인연을 담은 작품과 아카이브를 집대성한 ‘미술과 문학의 만남’전 같은 근대기 전시가 반향을 일으킨 것 말고는 회자된 수작 전시는 거의 없었다.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해 10개가 넘는 국내·국제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등의 국제 미술제도 잇따라 열렸지만 진부한 어법만 되풀이될 뿐, 신선한 시대적 화두나 형식 실험의 성과는 기대할 수 없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오히려 그동안 변방이었다가 지난해부터 두각을 드러낸 부산, 대구, 광주, 광양 등 지자체 미술관들의 약진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끌었다. 이건희 컬렉션 유치 경쟁의 여파로 낙후됐던 지방 미술관 인프라 개선 작업이 관의 지원과 지역민의 관심 속에 본격화했고, 중견 큐레이터 출신 관장과 학예사들의 집요한 노력으로 ‘리암 길릭’전, ‘볼탕스키’전, ‘대구 근대미술’전 등의 중량급 기획을 펼치며 한국 미술판의 희망을 알렸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관련기사
Adblock test (Why?)
기사 및 더 읽기 ( 격동의 신호탄 '이건희 컬렉션'…팬데믹 활황 '미술시장 급팽창' - 한겨레 )
https://ift.tt/348Fl7C
매상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격동의 신호탄 '이건희 컬렉션'…팬데믹 활황 '미술시장 급팽창' - 한겨레"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