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두 도시 모두 시장의 성비위 문제로 보궐선거를 치르게 됐죠. 하지만, 흘러가는 모양새는 딱 봐도 부동산 선거입니다. 다른 이슈, 뭐 생각나는 게 있습니까? 모든 선거에서 부동산 문제는 늘 첨예한 이해가 걸린 이슈였습니다. 그래도 정도의 차이라는 게 있는 법이죠. 이번 선거만큼 부동산 이슈가 다른 이슈를 완전히 압도해버리는 선거가 과거에도 있었나 싶습니다. ‘부동산 규제’ 때문에 ‘LH 사태’가 터졌다? 그 이유는 다 아시는 대로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한 달 전에 터진 ‘LH 사태’죠. 사태가 터지자 마자, 이번 보궐선거가 부동산 선거가 될 거라고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폭발력이 큰 사건이었던 거죠. 그런데 유력 후보들의 공약이나 캠페인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LH 사태의 본질은 부동산 투기였는데요. 지금 후보들이 앞다퉈 내놓는 공약들은 하나같이 부동산 개발 공약이고, 규제 걷어내기 공약입니다. 규제 때문에 LH 사태가 터졌다? 부동산 투기 억제하자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만들고 유지해온 게 부동산 관련 규제 아닙니까? 물론 효과가 신통치 않았을 수는 있겠죠. 이렇게 비유해보면 어떨까요. 한강물 탁하다고 정수처리장 없애자… 여러분은 수긍하시겠습니까? ‘LH 사태’에서 비롯된 ‘부동산 선거’ 그런데 왜 ‘투기 방지 선거’가 아니라 ‘부동산 개발 선거’로 흘러갔을까요? 지난 한달, 담론의 흐름과 변주를 짚어가며 함께 답을 찾아가보시죠. “열명 남짓한 LH 직원들이 경기도 광명·시흥지구에서 100억원대에 이르는 땅을 사들였는데, 3기 신도시로 지정될 거라는 내부정보를 이용해서 사전 투기한 의혹이 짙다.” 3월2일 참여연대와 민변이 폭로한 내용의 핵심입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이튿날 문재인 대통령이 3기 신도시 예정지 전체의 토지거래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합니다. LH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 관계 공공기관의 관련 부서 근무자와 가족까지 포함하라는 ‘깨알 지시’였습니다. 하지만 열명 남짓한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터지자 마자 대통령 총리 여당 할 것 없이 조건반사처럼 대응에 나선 건 이례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들이 투기한 곳뿐만 아니라 전 국토가 투기의 지뢰밭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LH 사태는 그 첫번째 지뢰가 터진 것이고, 어디까지 연쇄 폭발이 이어질지 가늠할 수 없었던 거겠지요. 가뜩이나 부동산 정책이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책으로 공격받고 있는 터에, 정권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라는 직감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공 주도 주택 공급’ 때리기 나선 조중동 하지만 공식 조사기구보다 먼저 움직인 건 언론들이었습니다. 대대적인 현장 취재 경쟁에 들어갑니다. 쪼개기, 알박기, 기획부동산 등등.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부동산 투기 수법인데요. 전혀 새로운 수법처럼 ‘의혹’이라는 이름으로 들춰집니다. 물론 언론의 강도 높은 비판은 들끓는 민심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 리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돌출적인 주장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3월4일치 동아일보> 사설을 보실까요. 제목이 ‘공공 주도 2·4대책 한 달… 민간은 무관심, LH는 투기 의혹’입니다.
동아일보> 3월4일치 사설
물론 둘은 아무 상관이 없죠. 공공이 주도해서 아파트를 짓든 민간에 맡기든, 신도시 예정지가 지정되면 땅값이 뛰기는 매한가집니다. 일반 투기꾼은 빠지고 LH 직원들만 알박기를 해서 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뜬금없이 “인기 지역 재건축”은 공공이 아닌 민간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달 전에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의 아파트 공급을 공공이 주도하기로 하는 바람에 LH 직원들이 타임머신 타고 몇해 전으로 돌아가 땅투기를 했다는 건가요? 이게 사설입니까, 공상과학소설입니까? 동아일보라고 이런 주장이 부조리하다는 걸 모를 리 없겠죠. 하지만 이런 식의 주장이 조중동과 경제지에서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집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정부가 공공 주도로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한 이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공공 주도 주택 공급 정책’은 토지 수용에서부터 건설과 분양까지 공공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양질의 주택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공급하겠다는 것이 정책 목표입니다. 민간이 주도할 때보다 ‘개발이익’이 줄어들어드는 건 자명합니다. 그래야 정책 목표에 다가갈 수 있을 테고요. 물론 공공이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LH 사태가 신뢰를 크게 훼손한 것도 맞고요. 그렇다면 해법은 뭐겠습니까. 부패와 비리를 발본색원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정교하고 실효성 높은 제도적 대안을 내놓는 것 아니겠습니까. ‘민간 도둑고양이’는 생선가게 맡아도 괜찮다? 그러나 조중동과 경제지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공공에 대한 불신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합니다. 공공이 썩었으니, 투명하고 청렴한 민간이 맡아야 한다 그 말을 다시 해석하면, ‘민간 토건족’의 파이를 더 키워야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다만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 없으니 돌려서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공직자 부동산 투기를 조사하고 있는 특별수사본부가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더라도, 언론은 불신을 거두지 않을 겁니다. 특검을 한들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사실, LH 사태의 본질은 그 폭발력에 비해 간단합니다. 한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 맡겼다! 그런데도 사태가 전개되는 양상은 난마가 얽힌 듯 어지럽습니다. 저는 정작 물어야 할 것을 묻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생선인가? 이 질문을 정색하고 던지지 않는 겁니다. 지난 3월24일 한겨레> 1면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제목은 ‘개발 발표 직전 사들인 용인땅 ‘5배 폭등’/ 경기도, 투자유치담당 전 공무원 고발’. 고양이는 투자유치담당 전 공무원입니다. 생선은 용인땅이겠죠. 그런데 어떻게 가만 있는 땅이 5배가 뛸까요? 땅이 무슨 도깨비방망이입니까? 도대체 이 생선은 번식력이 얼마나 되는 겁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9일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매도 아프다” “야단 맞을 일은 맞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에도 빠진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단 맞을 일은 뭘까요? 공직자의 일탈행위입니까? 아니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임대차 3법’ 통과를 코앞에 두고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 폭탄을 안긴 겁니까? 공공개발이든 민간개발이든 개발만 했다 하면 값이 5배로 뛰고, 또 그 개발이익을 땅 가진 자가 독점하도록 방조한 것에 야단을 맞아야 하지 않을까요? 개발이익을 챙긴 자가 공직자면 안 되고, 민간인이면 괜찮은 겁니까? 이런 질문을 대놓고 하지 않으면 계속 변죽만 울리게 되지 않을까요? 모든 고양이를 고양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일부 고양이만 선택적으로 고양이라고 부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겠습니다. 조선일보> 3월30일 1면입니다. 공정을 외친/ 위선의 퇴장’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얌체짓을 비꼰 제목입니다. 파수견 탈을 쓴 도둑고양이 맞습니다. 정부 부동산 정책을 공격하기에 이만한 소재도 없을 겁니다. 바로 밑에는 ‘서울 아파트 전셋값 평균 6억/ 임대차법 7개월 만에 1억 올라/ 매매 가격은 평균 11억원 임박’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임대차 3법으로 전셋값도 폭등하고,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은 더 폭등했다는 겁니다. 원인에서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논쟁적인 부분이 많지만, 숫자는 맞습니다. 청와대와 정부 안에 도둑고양이가 있는데, 잘 될 턱이 있나 하는 메시지가 구성됩니다. 이번엔 4면으로 가보시죠. ‘9급까지 공무원 137만명 재산등록…“우리가 투기꾼이냐”’ 문재인 정부가 전날 부당이득에 대해 3~5배까지 환수를 하고, 2년 미만 단기 보유 부동산에 대해 양도세율을 20%포인트 올리고, 토지 취득 과정을 투명하게 하는 것과 함께 모든 공직자의 재산등록을 의무화한 것을 비판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건 쏙 빼고 힘없는 하위직 공무원들만 동정합니다. 같은 하위직도 LH나 국토부 소속만 아니면 괜찮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날 지면 구성의 메시지는 고위직 도둑고양이들이 만든 정책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냐, 애먼 하위직 잡는 건 애먼 민간을 잡는 거와 다르지 않다,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투기를 제대로 잡으려면 저 정도 대책으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더 강도높게 개발이익을 환수하라, 이런 말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자, 이제 보궐선거 얘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선거라는 건 간단히 말해서 유권자의 표심을 얻는 것입니다. 서울시민 다수가 지금 집값이 너무 올랐고, 그때문에 덩달아 전셋값도 올랐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집값을 떨어뜨리는 공약을 내놓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물론이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그런 공약을 내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낙선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닐 겁니다. 서울시민 다수가 그걸 바란다고 보는 거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무튼 그 효과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거 약자 위한 공약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 ‘2·4 주택 공급 대책’과 공시가격 인상 같은 조처에 따라 서울 집값 상승세가 가까스로 완만한 흐름을 띠기 시작했는데, 재건축 추진 지역에서는 오히려 최고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두 후보가 앞다퉈 재건축 규제 완화 공약을 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세훈 후보는 한강변 아파트의 층고 제한을 풀고, 상계동과 목동의 재건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오 후보의 공약이 널리 공유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박영선 후보는 재개발·재건축에서 ‘공공 주도’ 방식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2·4 대책’을 흔드는 공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거 약자를 위한 공약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집값 떨어뜨리겠다”는 공약 나와야 최저 주거기준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이들은 투명인간입니다. 그들에게 과연 ‘고양이’는 누구일까요? LH 직원, 지자체 공무원, 국회의원뿐일까요? 보증금 인상 청구서를 내미는 집주인은 아닐까요? 그 침묵의 틈새를 조중동과 경제지들이 집요하게 파고 들어, 부동산 규제와 공공주도 정책을 흔들고 있습니다. 솔직해졌으면 합니다. 우리 미래 세대는 이런 집값으로는 미래를 꿈꿀 수 없습니다. 서울의 집값을 떨어뜨리겠다는 공약이 절실한 이윱니다. 정치인에게 기대할 수 없으면 유권자가 직접 해야 합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누구에게, 어떤 부동산 정책에 투표하시겠습니까? 기획·출연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PD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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