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애호가로서 미술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모르겠지만 단순하게 단기투자를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한다면 미술시장은 그리 좋은 조건의 시장이 아니다. 투자로서 미술시장을 본다면 미술시장은 속성상 ‘선물시장’과 같은 ‘예측시장’이다. 따라서 미술품을 투자로 구입할 때는 1년 또는 2년 아니면 1~2개월 뒤에 얼마나 오를 것인가 예측해서 투자를 결정한다. 선물시장의 중요 경제적 기능은, 가격 변동의 위험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헤저(Hedger)로부터 가격 변동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보다 높은 이익을 추구하려는 투기자와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하다. 어쩌면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헤저와 투기자의 승패를 결정짓는 구조다. 이것이 투자로서의 미술시장의 원칙이자 속성이다.
하지만 미술시장에 이렇게 투기자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10년 이상 소장하면서 그간 작품을 즐기고 이익을 내는 장기적인 투자자들도 있다. 이들은 투자보다는 애호 또는 감성적인 미술 애호가들인 경우가 많다. 이들이 이익을 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술가들의 명성과 작품의 질이 하루아침에 좋아지고, 반짝하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평판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시장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거래 시 수수료가 높아 짧은 기간에 여러 차례 거래를 하다보면 소액 작품의 경우 수수료의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 미술 분야에 광범한 투자를 했던 영국철도연금기금은 인상파 회화의 경우 20% 이상의 연평균 수익률을 냈는데, 이 경우 최소한 보유기간이 10년 이상이었고 투자 대상 작품도 스테디셀러인 ‘인상파’를 비롯한 ‘고전회화’가 50% 이상이었다. 따라서 투자목적으로 미술시장에 뛰어들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10년 이상의 장기투자와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투자가 가능한 자금을 가지고 미술시장에 들어오는 것이 좋다. 그리고 스테디셀러를 찾는 매의 눈을 길러야 한다. 하지만 좋은 그림을 알아보는 눈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닌 것은 자명한 일. 그렇다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신뢰할 만한 정보 중 하나가 독일에서 발행되는 쿤스트 콤파스>이다. 또 하나는 매년 독일의 경제잡지 캐피탈>이 발표하는 ‘최고의 예술가 100인’인데, 이 자료는 나름 미술시장의 베스트셀러와는 다른 식으로 매년 ‘내일의 별’ 순위를 매겨 100명을 발표한다. 1970년부터 시작한 이 자료는 올해 51번째 100대 작가를 선정해 발표했다. 뒤셀도르프의 미술잡지 기자로 일했던 빌리 본가르드(1931~1985)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100대 작가 리스트는 매년 갱신되어왔다. 1985년 그가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잡지 아트쾰른>을 통해 발표되었고 그 후 그의 아내 린데 로 본가드가 맡아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최근에는 매년 11월 독일의 경제지 캐피탈>에서 발표하고 있다.
독일의 100대 작가 명단이 주목을 받는 것은 대개의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매체들의 작가들 순위가 미술시장, 특히 경매시장의 낙찰률과 낙찰가를 중심으로 결정되는 데 반해 이 ‘미술나침판’의 경우 시장과는 관계없이 다른 기준으로 작가들의 순위를 결정한다는 데 있다. 사실 미술계의 순위를 매기는 일은 계량화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다양한 요소를 정량화해서 점수를 매겨 총점을 내는 순서로 작가의 순위를 정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 세계의 약 3만 명 이상의 작가를 대상으로 주요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과 100개 이상의 주요 그룹전에 참여한 횟수이다. 우리나라의 국립현대미술관과 리움을 포함한 세계의 300여 개 미술관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모든 미술관의 개인전에 같은 점수를 주는 것은 아니다. 뉴욕의 MoMA, 테이트모던, 구겐하임, 함부르크반호프, 퐁피두센터 등 주요 미술관 등 1·2·3 등급으로 차등을 두어 점수를 부여한다.
또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도쿠멘타, 휘트니 비엔날레 등 100개 정도의 주요 국제 미술행사의 참여도, 300여 개 표본미술관의 해당 연도 작품 소장 여부와 건수, 터너상이나 기타 주요 미술상 수상 횟수, 아트인 아메리카> 플래시 아트> 쿤스트포름> 파케트> 같은 주요 미술전문지에 리뷰나 작가론이 게재되는 것도 점수로 환산한다. 이들 잡지에 많이 오르내릴수록 당연히 점수도 높아진다. 이 외에 공공미술의 참여도와 그 설치 위치도 반영한다. 처음에는 100인의 작가를 선정했지만 1987년부터 작고작가들의 순위를 정하는 ‘올림프(Olymp)’ 와 함께 이전에 100인 명단에 없었지만 해당 연도의 12개월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100인을 별도로 발표하는 ‘내일의 별’ 부분으로 나뉜다.
올해도 어김없이 100대 작가명단을 발표했는데 ‘게하르트 리히터’(1932~ )는 2003년 처음 랭크된 이래 지금까지 18년간 1위를 지키고 있다. 그 뒤는 미국의 ‘브루스 나우먼’(1941~ ), 3, 4위는 독일의 ‘바젤리츠’(1938~ )에 이어 ‘로즈마리 트로켈’(1952~ ), 미국의 ‘신디 셔먼’(1954~ ), 독일의 ‘울라퍼’(1967~ ), ‘토니 크랙’(1949~ ) ‘안젤름 키퍼’(1945~ )와 남아공의 ‘켄드리지’(1955~ )가 차지했고 이미 ‘크노벨’(1940~ )은 10위권에 새로 들어왔다. 우리나라의 ‘양혜규’(1971~ )가 지난해보다 7계단 상승해 99위에 올랐고, ‘히토 슈타이얼’(1966~ )이 21계단 올라 96위, ‘발리 익스포트’(1940~ )도 21계단 상승한 94위, ‘스기모토 히로시’(1948~ )는 11계단 올라 93위에 랭크되었다. 가장 많은 상승률을 보인 작가는 ‘요셉 보이스’(1921~1986)로 올해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많은 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밖에 ‘바젤리츠’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와 ‘내일의 스타’의 선두에 오른 ‘야요이 쿠사마’(1929~ )가 있고 ‘알릭자 크웨이드’(1979~ )와 ‘안느 임호프’(1978~ )가 이름을 올렸다.
이번 순위표를 보면 여성 작가들의 약진과, 특히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는 운동 후 흑인 작가들의 상승도 특징적이다. 또 사운드 아트와 미디어 아트도 성장세다. 100인의 작가 중 독일 작가 28명, 미국 27명, 영국 12명이 차지하고 있다. 중요한 ‘작고작가 20인’ 명단에는 미국이 11명의 작가가 랭크되어 독일(4인)보다 많다. 우리나라의 백남준은 16위를 차지했다. 또 내일의 스타에는 미국 23인, 독일 19인, 영국 12인 순으로 나타났다.
아마 이 리스트를 보면 적어도 어떻게 스테디셀러 작가들을 찾아 투자(?)를 해야 할지 대략적인 방법이 보인다. 그렇다. 어디고 떴다방은 있기 마련이지만 그들의 감언이설을 피할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년에는 지라시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을 믿는 투자로 대박 나시길.
[정준모]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5호 (202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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