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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가장 비싼 땅이었는데'…쇼핑 1번지 명동의 쇠락 [방영덕의 디테일] - 매일경제

명동 거리 곳곳에 나붙어 있는 임대 문의 표시 [사진출처 : 매일경제DB]
▲ 명동 거리 곳곳에 나붙어 있는 임대 문의 표시 [사진출처 : 매일경제DB]
[방영덕의 디테일] 거리상은 가깝지만 심리적으로 꽤 멀게 느껴지는 곳이 있습니다. 명동 상권과 인근에 위치한 주요 백화점 간 거리가 그렇습니다.

'쇼핑 1번지'이자 매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땅으로 이름을 날리던 명동은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각종 소매 상품부터 다양한 먹거리를 팔며, 화장품 로드숍이 즐비하던 이곳엔 외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났습니다. 세계 각국의 인사말로 고객을 맞이하던 직원들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졌죠.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하늘길이 뚝 끊기자 명동 상권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비싼 임대료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짐을 싸 나간 상가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의 자료 분석 결과 올해 3분기 명동에서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47.2%로 나타났습니다. 서울 중대형 상가의 평균 공실률(9.7%)을 크게 웃도는 수준입니다.

장기화 된 코로나에 글로벌 기업들도 방을 뺀 지 오래됐습니다.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던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이나 글로벌 스파(SPA) 브랜드 H&M 역시 국내 1호점으로 상징성이 큰 명동 눈스퀘어점의 문을 닫았습니다.

상가 10곳 중 4곳 이상이 텅 빈 채 2년 가까이 지나다 보니 메인거리 외 불꺼진 골목길을 저녁에 걸을라 치면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연말을 맞아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내년 1월 21일까지 선보이는 본점 본관 미디어 파사드 [사진출처 : 신세계백화점]
▲ 연말을 맞아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내년 1월 21일까지 선보이는 본점 본관 미디어 파사드 [사진출처 : 신세계백화점]
명동거리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가로지르면 신세계와 롯데백화점 본점이 위치해 있습니다. 두 백화점은 벌써 크리스마스 조명 불을 환히 밝혔습니다. 주변이 깜깜해지는 저녁이 되면 눈이 부실 정돕니다.

밤사이 백화점 외관에 조명을 켜놓는 비용만 한 달에 수억 원이 들지만 연말 쇼핑객 맞이를 위해 예년보다 서둘러 불을 켰습니다. 불꺼진 명동 상권과 더욱더 대조를 이룹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 외국인 관광객들은 종종 명동 한복판에서 새벽부터 긴 줄을 늘어섰습니다. 토스트를 사먹기 위해섭니다.

관광을 더 일찌감치 하기 위한 목적이 컸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이 때문에 외국인에게 아침 식사를 팔던 식당과 가게들은 폐점했거나 오전 11시가 넘어야 문을 엽니다.

반면, 길 건너 위치한 백화점 앞에서는 새벽부터 긴 줄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더 자주 봅니다. 명품 가격 인상 소식이 전해진 날 서둘러 명품을 사두기 위해 몰려든 이들입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민 터널이 설치돼 불을 밝히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민 터널이 설치돼 불을 밝히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양극화.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속성입니다. 재난이나 경제적 격변기에 이 양극화는 더욱 극대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1997년의 IMF 경제위기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도 명품과 같은 고가 상품 시장은 크게 성장했습니다. 경제적 격변이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켜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시장을 키우기 때문입니다.

최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1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한국 부자는 모두 39만3000명, 전체 인구의 0.76%로 추정됐습니다.

부자 수는 2019년보다 10.9% 늘었는데, 이 증가율이 2019년(14.4%)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습니다.

장기간 묶여 있는 부동산 자산과 달리 금융자산은 손쉽게 현금화가 가능합니다. 그만큼 코로나 사태 속 현금 부자가 늘었다는 얘깁니다.

상대적 박탈감에 무기력함을 호소하는 사람들 역시 많아졌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19세 이상 인구 중 우리 사회에서 노력한다면 본인 세대에서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5.2%에 그쳤습니다.

임대 표시를 걸어둔 명동 한 상점 바닥에 쌓여 있는 각종 고지서들 [사진출처 : 매일경제 DB]
▲ 임대 표시를 걸어둔 명동 한 상점 바닥에 쌓여 있는 각종 고지서들 [사진출처 : 매일경제 DB]
또 절반 이상은 자식 세대로 넘어간 뒤에도 계층 이동이 쉽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향은 자신을 '하층'이라고 판단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했는데요.

통계청에 따르면 본인이 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계층 이동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14.9%에 불과했고, 65%는 계층 이동 가능성이 작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왔지만, 그 사회·경제적 영향은 매우 차별적인 상황입니다. 양극화를 좁히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백화점의 역대급 실적이나 보복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얘기는 전혀 딴 세상의 얘기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빚에 빚을 얹어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얘기도 저 먼 나라 얘기가 아닙니다.

같은 명동 상권에서 매일같이 보고, 들을 수 있는 얘깁니다. 비록 '위드 코로나' 속 음식업종 매출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지만, 명동 상권의 핵심인 소매업종 회복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명동에서 인근 백화점까지 가는 길은 지상 뿐 아니라 지하 쇼핑센터를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사실 여러 갈래 길이 있습니다.

양극화를 각자 그들이 사는 세상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순간 한걸음을 떼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란 생각을 갖는다면,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 공감력을 확대한다면 두 곳의 거리는 결코 멀지 않습니다. 보다 자주 왕래할 수 있습니다.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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